하. 그 뒷 이야기들…

증언 1. 사단참모

전투지경선상의 약점은 양개 부대장의 철저한 협조로 보완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단일 보급로를 양개 군단에 분할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피치 못하여 분할하였을 때는 긴밀한 협조 가 있어야 했다.

3군단의 주보급로를 미 10군단 지역에 포함토록 함으로써 군단에서는 유일한 보급로를 독자적으로 갖지 못하고 나아가서는 이곳의 요지인 오미재(오마치 고개)가 적에게 차단됨으로써 군단이 무너지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미 10군단장이 어떠한 의도 하에서 3군단과의 경계선상인 오미재에 1개 대대를 배치한 데 대하여 항의하였는지, 그의 항의가 미 8군을 통하여 이 대대를 철수하라는 명령으로 하달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오미재 고개에서 병력을 철수한 다음이라도 미 10군단에서 이에 필요한 조치를 했어야 했는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전술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짓이다. 군단이 이런 봉변을 당한 근본적인 책임은 미 10군단장 알몬드 소장과 미 9군이 져야 한다.

적의 전술은 소수부대로 아군 전선 후방 깊숙이 침투하여 목을 차단하고, 피리를 불고 꽹과리를 치면서 심리전을 전개하여 아군의 전투의지(戰鬪意志)를 무너뜨리는 수법이었다. 이 전술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인접 군단의 전술적 요지인 오미재의 목을 텅텅 비어 놓도록 한 처사는 지탄을 받아야 마땅하다.

아울러 대부대일수록 전투지경선상의 전술적 약점은 반드시 양개 부대지휘관에 의하여 협조되어야 한다.

증언. 대대장, 연대참모

싸울 생각은 않고 공포에 사로잡혀 살겠다는 본능에 따라…….

최선을 다하여 싸우다가 패하였다면 왜 패전하였는가에 대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3군단의 경우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으면서도 중공군에게 당해버렸고, 더욱이 군단끼리의 협조 잘못으로 그 많은 인명을 잃었으니 누구에게 잘못을 탓하랴!

군단장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양개 사단장이 서로 미루고 이를 기피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하 부대를 풍비박산(風飛雹散)시켜, 탈주라는 흉한 모습을 전사에게 남겼다.

명령에 대한 권인가 떨어지고 포위당하면 무조건 도망만 치는 상처받은 전통을 남기고, 위아래 지휘계통도 없이 몰려 뛰어다니는 추한 모습만 남겼다.

차라리 7사단의 경우처럼 중공군의 노도 같은 인해전술에 밀려 후퇴하였다면 불가항력이라고 하지만, 당시 3사단과 9사단은 각기 98%의 병력과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으면서도 마치 장 개석 군대가 일본군에게 쫓기어 36계 줄행랑 식으로 무조건 도망치듯 하였으니 이 부전패퇴(不戰敗退)의 책임은 양개 사단장에게 있다.

증언 3. 대대장, 사단참모

비가 온다면 장독 뚜껑부터 덮는 것이 우선 아닌가?

중공군의 춘계공세에 대하여 상부에서 하달되는 일일정보 보고서를 통하여 중공군의 대공세가 중동부에 지향될 것이라는 정보와 또한 3군단 정면의 적정과 포로 심문을 통하여 공격일자까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집안에서 비가 온다고 할 때 장독의 뚜껑을 가장 먼저 덮듯이 측후방의 취약점에 대한 대비책을 먼저 수립해야 하지 않았는가?

5월 17일 아침에는 오미재에 적이 1개 중대 밖에 없었다. 그런데 9사단이나 3사단에서는 전방부대가 철수중이라 당장 투입할 병력이 없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양개 사단에는 사단지휘소를 경비하는 대전차 공격대대가 있었다. 따라서 양개 사단장은 이들 대전차 공격대대를 후방에 투입, 오미재의 적을 격퇴하는 긴급조치를 취함이 최선의 방책이었으나 병력이 없다고 양개 사단장이 서로 미루었다.

특히 9사단에서는 자기의 측 후방인데로 공중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으며, 군단에서도 전혀 공중지원을 이용하지 못했다.

제트기 1개 편대만 와서 네이팜탄으로 공격을 했으면 오미재의 적은 군고구마가 되었을 것이었다. 5월 17일 UN군은 717회나 공중공격기를 출격시켰다.

증언 4. 사단 작전처 작전장교

공포와 공황(Panic)이 무엇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고, 마치 인간이 소 떼 몰려다니듯이 우루루 우루루 몰려 다녔던 것을 창피스럽게 생각한다. 반드시 대비책이 사전에 강구되고 연구되어야 했다.

철수 시에 많은 장병이 기아와 체력소모로 탈진해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그들을 매장도 못해주고 포로로 잡히는 것을 눈앞에 보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못하고 그저 도망가기에 바빴다. 책임감을 느꼈다. 특히 여군이 1개 소개가 있었는데 나중에 집결한 인원은 4～5명에 불과했다. 가슴 아픈 일이었다.

증언 5. 소대장

체력이 약하고 하체가 부실하면 일찍 낙오되거나 죽는다.

아무 것이나 잘 먹어야 산다.

사단장이 지휘도 하지 않고 각개약진으로 방대산으로 올라가는데 이때 여군들도 있었다. 광원리 민가에 강이 있는데 그곳에 외나무다리가 있었다. 7사단을 포함하여 3사단, 9사단 등 3개 사단 병력이 혼합되어 질서 없이 먼저 다리를 건너려고 하다가 수라장이 벌어졌는데도 누구하나 지휘하는 자가 없었다. 서로 건너려다가 다리가 무너졌다. 그래서 헤엄을 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물어 빠져 죽었고, 못 건너온 사람은 급류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중공군도 우리 병력이 하도 많으니까 공격을 못하고 그저 소 떼 몰듯이 이리 몰로 저리 몰고 하기만 했다. 부상당하면 도리 없이 낙오가 되어 포로가 되었다. 내 동기생 김 해진 소위도 다리에 총을 맞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강을 건너온 뒤 소나무 숲 속에서 보았다. 산을 기어오르면서 보니까 나무를 붙들고 많이 죽어 있었다. 기아와 탈진 때문이다. 장교들이 많았다.

체력이 약하고 하체가 부실하면 일찍 낙오가 되거나 죽었다. 풀이라도 뜯어 먹은 자는 탈진하지 않고 살아왔다. 장교들이 많이 쓰러진 것은 체력이 못 미쳤기 때문이고, 병사들이 잘 적응한 것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온 장정이 많아짐을 지고 걷는데 숙달되어 있고 아무 것이나 잘 먹었기 때문이다. 도라지, 취나물, 더덕 등.

증언 6. 소대장

헤엄을 못 치는 사람이 많이 빠져죽었다.

광원리에서 큰 개울을 건널 때 건너편 고지에 있던 적 1개 소개 규모가 사격을 가해왔다. 이때 3천여 명의 병력이 지휘체제(指揮體制)가 서지 않아 공격도 못하고 그대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만 갔다. 물은 약간 급류이지만 가슴정도 찼는데 건널 만 하였으나 적의 소총 및 박격포 사격으로 수라장이 되었다. 헤엄을 못 치는 사람은 많이 빠져 죽었다.

도중에 여러 번 사격을 받아 우리 일행은 14명으로 줄었다. 산을 헤메기를 13일째 되는 날 집 주 채를 발견하고 들어가 보니 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 할머니의 안내로 1km정도 떨어진 밭 가운데 있는 방공호 안으로 안내되어 14명이 피신하면서 감자 등을 얻어먹었다. 다음날 포탄이 떨어져서 나가보니 아군 8사단이 올라왔고 그래서 우리는 구출되었다. 낙오자 2명을 잡았는데 1명은 북괴군에서 귀순한 귀순병이고 1명은 국군 기갑연대에서 낙오한 사병이었다. 사단을 찾아가니 사단장이 반가워하면서 미 고문관의 소식을 물었다. 그래서 중간에서 탈진해 죽었다고 하니 무척 서운해 했다.

증언 7. 포병 관측 장교

어떤 집 대문에는 「염병 앓는 집」이라고 써 붙이고…….

철수하는데 보니 3사단 18연대의 중․상사들이 많이 있었는데 적이 오는 대로 겁내지 않고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니 나도 안심이 되었다. 그들은 상급자들에게 욕질을 하면서 아무리 백골연대가 강해도 상급지휘관이 써먹지 않으면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하면서 장교들이 앞장서서 먼저 도망을 쳤다고 불평을 하고 있었다. 각 사단들이 하루 종일 우물쭈물하다가 한밤중에 포와 장비를 파괴하고 철수하라고 하드라면서 두고 온 장비를 무척 아쉬워했다.

도중에 보니까 장군이 베잠방이를 입고 있었다. 옆에 지도를 든 중위가 전속부관 뺏지를 달고 있어 장군인 줄 알았다. 3일 만에 하진부리로 왔는데 3끼를 굶고 걷기만 하다보니 걷다가도 잠을 잤다. 비가 왔는데 길에 떨어진 퉁퉁 불은 건빵 한 개를 미 고문관이 주워서 먹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너무 처량하였다.

철수 도중에 군인들은 민가에서 밥을 얻어먹었는데 하도 많이 와서 밥을 달라고 하니 어떤 집에서는 집 대문에다가 「염병 앓는 집」이라고 써 붙인 것을 보았다.

증언 8. 중대장

박격포 몇 발에 모두 흩어졌다.

산 위에서 쏘는 박격포 몇 발에 수천 명을 병력이 제멋대로 뛰어서 분산되었다. 나는 포위망 속에서 숨어 있다가 포로가 되어 현리로 다시 붙들려 갔다. 그곳에서 미군의 반격 시 탈출했는데 민가에 밥을 얻어먹으러 갔다가 또 잡혔다.

이와 같이 탈출했다가는 또 잡히고 하기를 네 번, 다섯 번째 만에야 살아났다. 중공군은 아군의 중상자는 사살하고 수용소에서는 매일 저녁에 정치교육을 했었다.

증언 9. 소대장

밤중에 산중턱에서 밤새 뱅뱅 돌았다.

5월 17일 밤이 되어 고단해서 호를 파고 자는데 새벽에 보니 중공군이 약 200m 전방에서 서서 총을 쏘고 와글와글하면서 산을 내려왔다. 그래서 우리는 분산하여 방대산으로 올라갔다. 노무자 1명을 포함하여 모두 12명이었는데 밤중에 방향을 잘못 잡아 산 중턱에서 밤새 뱅뱅 돌았다. 건빵 두 봉지를 12명이 나누어 먹고 도라지, 산나물을 뜯어서 철모에 끓여 먹으며 3일간 연명했다.

3일째 되는 날 골짜기에 있는 민가에서 묵, 콩나물, 강냉이, 소금 등을 조금 얻어먹었다. 이 집에서 우리보다 먼저 들어와 음식을 얻어먹고 나가는 중공군 10여 명을 내 M2 칼빈으로 쏴서 죽여 버렸는데 영감님이 「아이쿠! 우린 중국 놈들에게 죽었구나!」하면서 한탄을 하였다.

남쪽에서는 아군 포성이 들려왔고, 중공군은 주로 밤에만 움직였는데 낮에도 무리를 지어 후퇴를 했다. 우리는 지나가는 중공군 4명을 잡았다. 영감님이 궁금해서 내려가 보니 중공군 시체는 전부 치웠고, 아무 일도 없었다.

새벽에 영감님을 내보냈더니 2km 떨어진 동네에 갔다 와서 국군이 동네에 진을 치고 있다고 전해 주었다. 모포 3매하고 나의 시계를 풀어 주니 주인은 무척 고마워했다. 영감님의 안내로 부대에 가까이 가니 손을 들라고 해서 손을 들었다. 이곳에서 포로는 인계하여 주고 1주일 만에 본대에 복귀했는데 실종으로 보고 되어 있었다.

아군 중에 포로가 된 사람이 전체의 3분의 1이나 되었지만 적의 감시병이 적었기 때문에 탈출 기회가 많아서 많은 사람이 탈출해 나왔다.

증언 10. 중대장

중국말을 잘 하는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5월 19일 안개 낀 아침 18명의 대원과 이동하다가 중공군 대병력과 조우, 모두 포로가 되었다. 여자 군관 중위가 항미원조(抗美援朝)를 하러 왔다고 하면서 심문을 하였다. 나는 사병이라고 했지만 그려는 나의 체격이나 용모가 장교임에 틀림없다고 윽박지르면서 내 옆에다 위협으로 권총을 쏘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중국 사람이라고 하니, 차에 태워서 상급부대로 끌고 갔는데 그들은 내가 원하면 중국에 보내 군관학교에 보내줄 수 있다고 하였다. 나는 중국 군관학교 출신으로 중국말을 잘 했다. 그 여자는 노골적으로 나한테 반해서 중국에 함께 가서 결혼하자고 막무가내로 대들었다.

중국말을 잘하는 나를 의심하지 않았고, 평소 그들도 친하게 지내면서 의심을 하지 않게 하고는, 하루는 그들과 술을 마시면서 그들을 만취시키고는 권총을 빼앗아 그들을 다 쏴 죽이고 취사장에 있는 부하들을 데리고 탈출하였다. 서로의 암호는 숫자로 상대방이 7하면 3이라고 대답하기로 하였다.

도중에 중공군 수색대 1개 소개와 만났으나, 국군복장을 한 내가 군단(중공군)에서 파견된 수색부대라고 하자 아무 의심도 않고 지나갔다. 6일 만에 본대를 찾아 왔는데 중국말을 잘하는 덕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증언 11. 대대장

이런 망할 놈의 군대가 어디 있어!

나는 병력 300여 명을 이끌고 철수하는데 하진부리 근처에서 사단장과 연대장을 만났다. 이때 적이 박격포를 쏘면서 추격하는데 나에게만 적을 막으라고 하면서 그들은 도망을 쳤다. 이런 망할 놈의 군대가 어디 있는가? 지휘관은 먼저 도망을 치더라도 다음 행선지는 알려주어야 적을 저지하고 뒤따를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적을 저지하다가 제일 늦게 철수했다. 내 주변에는 각 중대에서 나온 연락병과 대대본부 요원 들 14명이 함께 있었는데 적에게 꼬리를 잡혀 치고받는 싸움을 했다. 적이 내 등을 잡는 것을 내 차 운전병이 개머리판으로 적의 머리를 내리쳐서 처치하였다. 어떤 병사는 배낭에 쌀만 가지고 나오다가 총을 맞았는데 총알이 쌀 속에 박혀서 살아났다.

고참들이 호를 파고 적을 저지하고…….

백골부대는 참 멋있는 진짜 군인들이었다. 철수 중에 적이 따라오면 고참들이 호를 파고 적을 저지하고 대원들을 먼저 철수시켰다. 먼저 철수한 병력들은 조금 가다가 또 호를 파고 고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장교들은 맨몸으로 나와서 먹을 것이 없어 고생을 많이 했고, 미 고문관들도 시래기 국을 맛있게 먹고 나왔다. 안전지대에 나와보니 유 양수 연대장이 다 허물어진 민가의 호롱불 밑에서 병서를 읽고 있었다. 여유도 있어 보였고 믿음직했으며 장래 큰 군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철수 중에 아군기의 네이팜탄 공격을 두 번씩이나 받았는데 많은 아군이 오폭으로 죽었다. 미국 고문관은 시계와 카메라를 먹을 것과 바꾸어 먹기도 했고, 경리래 하사관들은 무겁다고 돈 짐을 강에 버리기도 했다.

증언 13. 사단군수참모: 사단장은 계급장도 없고 어디서 베잠방이를 얻어 입었는지…….

부대에는 식모 비슷하게 밥을 해주고 따라다니는 여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가난해 먹을 것도 없는 피난민들로서 한 여자는 아이를 업고 나왔는데 나중에 보니까 포대기만 남았었다. 뛰는 통에 아이가 빠져서 없어졌는데 어디서 빠졌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적에게 포위당하고, 아군기의 네이팜탄 공격과 기총소사를 받고 뛰어다니는 사이에 아이가 빠졌는데 울지도 않았다.

산에는 물이 없어서 새벽에 이슬을 받아먹었고 계곡에 오면 물을 마시고, 바위틈에 핀 진달래 꽃을 뜯어 먹었다. 허기가 져서 못 올라오고 쓰러지기도 하고 한번 쓰러지면 못 일어나 죽은 자도 많았다. 미 고문관들 중에는 낙오한 자가 많았는데 모두 포로가 되었다.

여러 번 포위를 당하면서 하진부리로 빠져나왔는데 사단장은 계급장도 없고 어디서 베 잠뱅이를 얻어 입고 있었다.

사단장들이 무책임했고 군단장도 잘못했다. 9사단장은 방대산 골짜기에 연대 병력을 집결시켜 가지고 앞에 있는 고지에 선착순으로 뛰어 올라가게 한 다음 선착한 병사에게 훈장을 달아 주었다. 조직적인 철수계획을 수립해서 시행할 생각은 않고, 이런 짓이나 하는 지휘관이 어디 있는가?

전장의 비극(悲劇)은 우리에게 무엇을 암시(暗示)하고 있는가?

우리는 현리계곡에서 발생되었던 대사건을 어떠한 시각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그동안 많은 시간이 지나 악몽은 잊혀졌고 우리군은 새롭게 도약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전장에서는 생존을 위한 병사들의 심리상태가 더욱 민감해지고 있어서 이러한 비극과 공포는 언제든지 다시 재현될 수 있다.

걸프전쟁 시 다국적군에 의해 쿠웨이트 시 탈환작전이 개시된 2월 27일, 수많은 이라크 군인들이 새벽부터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개별적으로 차량을 탈취해 도망가다가 도처에서 사살되거나 사막을 헤매나 쓰러졌다.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진 그들에게 성전을 선포한 「후세인」의 훈령은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이라크군의 탈출 현장은 광란과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으로 곳곳에서 불길이 일어나고 굉음과 사람의 비명으로 뒤범벅이 되어 걷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1991 년, 현대전을 치른 쿠웨이트시의 모습은 약탈과 방화, 살인 그리고 수십만 군대의 집단적 환각(幻覺)과 마비(痲痺)에서 오는 무질서한 패주였다.

이러한 집단적 공황(Panic)과 붕괴현상은 7월 7일 남예멘의 아덴 시에서도 발생하였고 반드시 군사작전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된다면 어디에서든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현대전에서 고도의 살상무기 앞에 노출된 전투 병사들의 전투반응도 역시 민감하고, 전장에 임하는 이들의 생존감각(生存感覺)도 첨예(尖銳)화되어 간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최강의 미군도 걸프전 이후 이른바 “New Age Soldiering"(신세대 전투병 육성)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을 착수하고 있다.

어처구니없게 확산된 현리계곡의 대실패는 세계 전생의 어느 곳에서도 존재한다. 구태에 무엇이 잘못되었고, 그 대책은 어떤 것인가를 지적할 필요는 없다.

이제부터 우리는 전투훈련에서 새로운 시각을 갖고, 전투지휘관은 전장(戰場)에서 무엇이 발생하며, 왜 발생하고,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가? 라는 감각을 되살려야 한다. 또한 이러한 전장감각(戰場感覺)은 어떠한 군사이론이나 전략, 전술보다 우선하여 기본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끝